해외 여기저기 배낭여행은 종종 다녔어도 국내 배낭여행을 한 기억이 없어서 요번에 혼자서 전라도를 가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국내 여행을 혼자서 하려고 하면서 가장 맘이 무거웠던 것은 숙박이었는데, 너무 비싸지 않은 숙소들이 인터넷으로 예약이 가능해서 아주 도움이 크게 되었다. 그래도 첫날밤을 지낸 한옥마을의 고택은 혼자서 자기는 좀 무섭긴 했다. 요번엔 큰 도시들만 가서 교통편에 문제가 없었지만,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다니기에는 역시 차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전주에서 시작을 했다. 서부산-전주는 겨우 2시간 40분 거리, 아침에 너무 일찍 도착해버려서, 포항에서 와서 점심과 저녁 식도락을 같이 하기로 한 승원이 오기까지 앉아서 책을 읽을만한 카페를 찾아서 전주의 명동이라는 객사 근처로 이동해 기다려야 했다. 일요일 점심은 콩나물국밥을 먹기로 했는데, 처음에 찍은 전주에서 제일 오래된 집은 마침 일요일이라 휴업이었고, 전주 시내의 재래시장인 남부시장 안에 있는 [현대옥]을 대신 찾아갔다. 조그마한 가게에 줄서서 들어가 먹는 분위기라 처음부터 맛난 집이구나 감 잡았다. (사진들은 나중에) 매운고추와 파와 마늘을 넣은 다대기가 칼칼한 맛을 내는 콩나물 국밥에 김을 부숴뜨려 같이 휘저어 먹는 수란이 같이 나왔다. 음식점에서 처음 본 그 콩나물 국밥집의 전통이라는 수란에 대해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143&aid=0000002744에 잘 나와있다. 겨우 4천원짜리 국밥인데 나는 아주 만족했다. 너무 배부르지도 않고 딱 좋은 양에 시원하고 감칠맛나는 국물.
점심을 먹고서는 전주 한옥마을로 이동해서, 거기 전통찻집인 [고신]의 고즈넉하고 따뜻한 방에 앉아서 모과차를 마셨다. 향이 아주 좋았다. 한옥마을에서 혼불 작가 최명희 문학관이나, 전통술박물관, 황손 자택을 비롯한 여러 고택들 등등을 구경하고, 저녁도 한옥마을 안의 한정식 집에서 먹었다. [예가]였나? 이 집은 깔끔하고 퓨전스런 음식들을 27가지나 내왔고, 육회와 낙지볶음등이 아주 맛있었긴 한데, 그래도 다음번에 전주 갈때는 궁중음식의 최고봉이라는 [궁]을 4명을 모아서 꼭 예약해서 가보리라 맘먹었다.
한옥마을 안의 [양사재]라는 고택에서 하룻밤을 유하려고 예약을 걸어두었다. 예약할때는 승원과 같이 묵을까 했었구만 승원이 당일날 바로 포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혼자서 해질무렵 양사재를 찾아갔더니, 이 휑뎅그레 커다란 고택에 그날따라 묵는 손님이 나 밖에 없다는 것이 아닌가. 주인 아저씨에게 아무래도 혼자서는 무서워서 못 묵겠다고 했더니, 예약금을 돌려주기로 하고 대신 길 아래의 시에서 운영한다는 [전주한옥생활체험관]에 방을 잡아주셨다. 거기 가서도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은, “여기 오늘 저 말고도 다른 손님들이 있나요?”였다. 한옥은 그냥 호텔보다도 더 밤이 무섭단 말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삐거덕삐거덕 덜컹 거리고, 화장실은 툇마루로 나가서 저쪽에 있지, 장지문을 잠글수도 없고, 다른 손님이 툇마루 저쪽에서 뭘 해도 내 방문앞에 있는 것처럼 벽이 덜컹덜컹… 여우가 집을 차려놓고 나그네를 꾄다는 무서운 옛날 이야기 같은 것들도 생각이 나고… 결국 절절 끓는 온돌 아랫목에서 밤새 무서워서+너무 더워서 자다깨다 자다깨다 하는 바람에 대신에 들고 갔던 책들을 한권반이나 읽어버렸다. 화장실 나가기 무서워서 물도 못마시는 통에 목도 말랐고… 한옥은 꼭 누구랑 같이 가서 묵어야 한다는 교훈!
덕분에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샤워하고 짐싸고 요와 이불을 개어올리고 나와서, 한옥 고택의 툇마루에 게으르게 앉아서 처마 밑으로 햇살이 그 질감을 올올이 더해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는 호사를 누렸다. 다른 손님들이 일어나서 소음을 내기 시작할 즈음에, 다른 손님들이 여우가 아니었다는 확인을 할 틈도 없이, 슬그머니 떠나왔다. 아침식사도 어제의 그 콩나물 국밥으로 하려고 맘먹고 재래시장통에 들어섰는데, 콩나물 국밥집 못가서 있는 순대 국밥집에 낚여서 이번에 간 곳은 또 유명하다는 [남문 순대국밥집]. 이 집에서는 피순대라는 것이 주종목인데, 이 순대는 당면을 넣지 않고 돼지피 선지와 다진야채만으로 순대를 넣어만든 것이라 순대가 두부처럼 썰리고 맛이 진했다. 국밥을 시키고 보니까 순대가 맛있어 보여서 국밥은 국밥대로 순대는 순대대로 먹고 아침부터 배가 터지는줄 알았다.
월요일은 유미랑 광주에서 만나기로 해서, 아침을 먹고나서는 전주 객사 거리를 좀 걷다가 전주 터미널로 가서 광주가는 버스를 탔다. 전주-광주 사이는 1시간 30분. 윰과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좀 일찍 도착한데다 광주 고속버스 터미널에 영풍문고가 있어서, 들어가서 광주 여행가이드를 좀 읽어보고자 했다. 근데 국내 여행 가이드책들 중에서 도시들에 대한 것들이 일천한데다가, 광주가 나오는 가이드북을 찾으면 “광주는 도시 크기에 비해 관광할 곳이 적은 편이다”라는 따위의 글귀가 나오곤 하질 않나, 맛집가이드를 펼치면 전라도의 다른 시군읍면의 이름들이 나오다가도 광주는 띄어먹고 넘어가곤 했다. 결국 점심은 윰과 만나서 광주 금남로를 구경하러 갔다가 그 동네의 그냥 깔끔하게 생긴 음식점에서 육회비빔밥을 먹었다. 별로 유명한 집이 아니었는데도, 꽤 맛있는 육회비빔밥이어서 “오 전라도는 아무데나 들어가도 기본이 되는구나”하는 인상을 남겼다.
점심을 먹고서는 광주에서 담양으로 이동했다. 담양은 광주의 위성도시 같아서 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40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담양에 도착해서는 일단 숙소에 체크인하고 쉬면서 딩굴딩굴 시간을 보냈다. 윰이 찾아낸 깔끔한 모텔이었는데, 닌텐도 위와 이따만한 액정티비가 달려있어서 만만세였다. 윰이 와중에 나 읽으라고 노다메 칸타빌레 만화책도 10권이나 들고와줘서 침대에 배깔고 누워서 만화책을 읽는 호사를 다 누렸다.
그날 저녁에는 담양에서 유명한 집인 [신식당]에서 떡갈비를 먹어주었다. 떡갈비는 갈빗살을 저며서 양념을 한 다음 도로 갈빗대에 그 햄버거 고기를 붙여서 구운 갈비인데, 왠지 편하게 갈비를 뜯자고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느낌이나 맛은 있었다. 2만원짜리 일인분에 겨우 3조각이 나왔는데, 먹고나서도 좀 아쉬웠다. 돌아오는 길에는 파리바게뜨와 과일집과 편의점을 습격해서, 아침먹을 보들보들한 빵들과 딸기 반박스와 산사춘, 오징어 따위의 안주를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는 닌텐도 위의 스포츠 게임을 좀 즐기다가, 마침 티비에서 하는 꽃보다 남자를 HDTV로 보면서 “고화질로 보니까 얼굴의 점들이 왜케 많으셔”라든가 “콧망울 옆에 화장 떡졌네” 이런 추임새를 넣었다. 만화책도 열심히 보고 딸기도 열심히 먹고 산사춘까지 마시고 났더니 어느새 고로롱 고로롱…
화요일 아침에는 느지막히 일어나서 파리바게뜨 빵과 딸기와 커피로 아침을 먹고, 담양 죽녹원을 구경하러 갔다. 담양은 대나무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작은 산 하나가 다 대나무로 뒤덮인 죽녹원이 개방되어 있다. 올림픽산의 빽빽한 우림 이런 거랑 비교하면 머리가 많이 빠져서 대머리가 되고 있는 과정인 것처럼 듬성듬성한 대나무 숲이지만, 그래도 바람이 불때 쏴아아아아 하고 댓잎들이 부대끼는 소리가 청명했다. 대숲으로 보이는 햇살도 좋고, 짧은 산책로도 좋았다.
점심은 [향교죽녹원]이라는 집에서 대통밥 정식. 1만원밖에 안하는데 배통짬이 샛노란 맛난 조기가 하나씩 나오고 대나무 통에 대나무 숯과 은행과 잣등을 넣고 지은 맛난 밥에, 신김치-홍어-삶은삼겹살의 ‘삼합’이 나오는 정식 꽤 괜찮았다. 홍어의 톡쏘는 맛은 이번여행에서 처음 발견한 것으로, 특히 윰에게서 삼겹살과 홍어를 신김치로 싸서 먹는 법을 배웠다.
점심식사 후의 후식으로는 죽녹원 근처 관방제림과 메타세콰이어길을 굽어보고 있는 포장마차에서 댓잎호떡. 엷은 초록빛을 띄고 있긴 하되 딱히 댓잎맛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랫만에 먹어보는, 아줌마가 바로 눈앞에서 만들어서 눌러 구우신 호떡이었다. 호떡 꿀이 흘러내려서 손가락을 덴 윰에게는 묵념.
다시 시내버스로 광주로 돌아와서, 광주에서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전라도가 너무 가깝고 (부산-전주 2시간 40분, 광주-부산 3시간), 혼자서 국내를 돌아다니는 것도 만만해서, 다음에도 한국 올때 다른 곳에 여행을 좀 다녀서 국내의 각지를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다음에는 도시보다는 좀 더 시골길을 걷고 싶다. 전주 객사의 ‘걷고 싶은 거리’도, 광주의 ‘걷고 싶은 거리’도 다들 프랜차이즈 옷가게 아니면 프랜차이즈 음식점들 밖에 없어서 식상했다. 문화의 거리랍시고 이름 붙인 거리들이 겨우 자본주의의 문화밖에 보여줄 것이 없나 싶기도 하고. 좀 더 특색있는 곳을 걷고 거기서 아니면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먹고 그러고 싶다. 친구들과 여행지에서 만나기로 해서, 거기서 같은 경험을 하면서 퀄리티 타임을 보내는 것도 아주 좋았다.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서 와준 친구들에게 고맙고… 다음엔 곰돌을 데리고 와서 곰돌에게도 이 맛난 것들과 보기 좋은 풍경들을 맛보게 해주고 싶은 맘도 크고… 음, 다음번엔 어디를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