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 어머님의 선물 중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표는 시애틀 오페라의 팔리아치 (파글리아치?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지난 토요일 저녁 7시반 공연을 보러 집에서부터 또 시애틀 센터까지 걸어갔다.
비도 오고 팜플렛에서도 캐쥬얼 오케이라고 했던 차라 굉장히 캐주얼하게 입고 갔는데, 시애틀 오케스트라 공연에 비해서 사람들이 많이들 차려입고 와서 놀랐다. 전에 베토벤 공연 갔을땐 청바지 입고 온 사람이 태반이어서 역시 시애틀이군 했었는데, 오페라 관객은 연령대가 더 높아서인지 밍크코트 님들이 자주 눈에 띄고 남자들도 양복 차림이라 시애틀에 저런 옷 가진 사람들도 사는구나 했다. 나는 underdressed라도 약간 self-conscious했건만 역시 텍산답게도 곰돌은 전혀 쫄지 않았다.
오페라를 여는 것은 어릿광대의 상자에 실려서 튀어나온 “프롤로그”. 프롤로그가 무대 위의 우리들도 인간, 그러니 우리의 허름한 무대와 장치를 보시지 마시고 우리가 전달하려고 애쓰는 메시지를 들어주시라 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극이 시작된다.
카니오는 마을에서 제일 가는 어릿광대(팔리아치), 그의 극단이 공연을 할때면 마을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든다. 극단의 못생긴 불구자 토니오는 카니오의 젊고 이쁜 아내 네다를 사랑하는데, 그녀에게 구애했다가 싸늘한 모욕을 당하고 복수를 결심한다. 한편 네다는 실비오라는 애인이 있어서 둘은 오늘 밤 공연이 끝나면 같이 도망을 갈 계획이다. 네다와 실비오가 함께 있는 장면을 본 토니오는 가서 카니오를 불러오고, 간발의 차로 실비오를 잡지 못한 카니오는 네다에게 애인의 이름을 대라고 추궁하지만 그녀는 입도 뻥긋 않는다. 그녀를 더 추궁하려는 찰나에 마을 공연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하는 카니오. 불타는 배신감과 깊은 절망을 안고서도 마을 사람들을 웃기기 위한 공연을 해야 하는 자신의 부조리한 처지에 대해 노래하는 부분이 감동적이다.
2막이 오르면 어떻게 어린 고아이던 네다를 데려다가 훈련시키고 사랑에 빠졌는지 하는 카니오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이 회상 장면은 시애틀 오페라 자신들의 interpretation으로 보통 팔리아치와 카발레리나 루스티카나를 함께 엮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관습인데 반해 이번 공연을 팔리아치로만 구성하고서 거기에 더한 것이다. 솔직히 본래 오페라에 없던 것이 더해진지라 완성도는 좀 떨어진다고 해야겠다.
막이 오르고, 카니오네의 코미디 공연은 공연 내용 조차도 부정한 아내가 남편 몰래 애인을 만나는 내용이다. 카니오는 결국 공연과 실제를 혼동하며 네다에게 애인의 이름을 추궁하고, 공연을 계속하려고 애쓰는 네다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죽어가면서 실비오를 부른 네다. 객석에서 달려나온 실비오 마저도 카니오의 칼에 찔려 죽는다. 그리고 유명한 대사 “코미디는 끝났다”로 막을 내리는 것이 이 오페라. 그 대사도 관습적으로는 카니오의 대사인데, 시애틀 오페라의 해석상으로는 토니오가 말하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카니오는 뒤에서 괴로워 하기에도 바빠서….
카니오가 느끼는 배신감과 슬픔도 이해가 가지만,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어린 소녀를 데려다가 (페도필이냐) 아크로바틱을 좀 가르치고 부려먹다가 자기가 사랑하게 되었다고 결혼해놓고 극단의 떠돌이 생활에 싫증이 난 네다가 떠나려고 했다고 죽이기까지 하다니 왠지 정이 안간다.
어쨌건 진짜 오랫만에 본 오페라라서 반가웠고, 요새 이런저런 공연을 찾아다니다 보면, 좀더 생활을 윤택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시즌에 토스카 공연도 챙겨 보고 싶고, 내년에는 뉘벨룽겐의 반지(이 대작은 보통 나흘밤에 걸쳐 총 15시간의 공연으로 이루어진다)도 공연을 하겠다니 일생에 한번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http://en.wikipedia.org/wiki/Der_Ring_des_Nibelungen
http://www.well.com/user/woodman/singthing/ring/story.html
팜플렛들을 뒤적이다 시애틀의 아트&렉쳐 시리즈 중에 노벨상 수상 작가 Orhan Pamuk (내이름은 빨강, 새로운 인생 등)의 강의가 작년 10월에 있었다는 것에 절망하고, 대신 여행 작가 Pico Iyer (Falling off the map)의 강의가 4월에 있대서 그거 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