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긴축재정 중이라 가계부를 열심히 적고있고, 2월에는 외식을 특히 자제하는 바람에 나가 사먹는 일이 적었는데, 그러다보니 좋아하는 스시를 거의 두달간 구경도 못하고 지나갔다. 그 전에는 스시가 고파지면 집 앞 브로드웨이의 Hana라는 질은 좀 떨어져도 싸고 푸짐한 스시집에 종종 가서 혼자서라도 저녁을 먹고 오곤 했는데, 가계부를 쓰기 시작하고 보니 그것도 자주 못하게 되었다.
어제는 저녁에 코펜하겐으로 출발하는 곰돌과 아침 7시반부터 집을 나서서 우리의 주말 루틴인 8마일 걷기를 했다. 중간지점의 스타벅스에 도착해서 앉은 시간이 10시반이었는데, 왠일인지 갑자기 강렬하게 “오늘은 꼭 스시를 먹어야겠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거다. 본래 스시를 별로 즐기지 않는 곰돌까지도 나의 이글이글 투철한 눈빛을 보더니 점심때 여는 스시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근데 프리몬트, 벨타운, 퀸앤 (시애틀의 동네 이름들)에 있는 스시집들은 왜 다 토요일 점심때 안여는 거냐. 겨우 찾아낸 한군데가 정오에 문을 여는 회전스시집인데, 앉아있던 스타벅스랑 가까워서 1시간반을 문열때까지 기다렸다 중국어 공부하고 덩견양이랑 챗 하면서.
정오가 되어 그 회전스시집에 가 봤더니 문앞에 사람들이 이미 줄을 서 있다. 근데 하필이면 우리 바로 앞에서 끊기면서 회전판 주위 자리들이 다 차버릴게 뭐냐. 30분 정도 더 기다리라는 것이 괜히 열받기도 하고, 정작 회전벨트위의 스시들이 맛나보이지도 않아서, 곰돌과 나는 에잇하고 돌아서버렸다. 벨타운까지 걸어가서 곰돌이 좋아하는 피자로 점심을 먹으면서 “오늘 저녁에는 꼭 스시를 먹어야겠어”라고 계획 변경. 코펜하겐 출장 때문에 오후 4시에는 공항에 가야 하는 곰돌이 내가 다른 친구를 불러서 같이 스시 저녁을 먹으면 자기가 사주겠다고 해서, 친구 Val한테 전화하고 시애틀에서 제일 좋아하는 스시집인 Kisaku에 저녁 예약.
Kisaku는 우리집에서 걸어서 가기 좀 힘든 거리인 Greenlake 동네에 있는 자그마한 스시집인데, 가격도 착하지만 결정적으로 니기리 스시들이 정말 신선하고 맛있다. 요리사에게 “알아서 맛난 걸로 주세요”라는 오마카세를 시키면 철따라 매번 새롭고 그날 들어온 제일 좋은 재료로 강약을 조절해서 그날의 식사 코스를 디자인 해 주시기 때문에 아주 훌륭하다. “하지만 우니와 오토로는 꼭 넣어주세요.” “당근이지.”
전에 sushi snob 친구가 시애틀에 다니러 온 것을 다른 스시집에 데리고 갔다가 스시가 맛없다고 거의 스시집에서 깽판을 놓는 바람에 나는 완전 창피해진 경우가 있었는데, 이 친구 그 스시집에서 돈도 안받겠다고 할 정도로 스시집에 무안주고 나온 이후에 나오자마자 택시잡아타고 키사쿠에 나를 데리고 왔었다.
늦은 저녁시간 예약이라 굶주린 배를 안고 기다리고 있는데, 틀어논 티비에서 나오는 드라마 Two and a half men에서도 Jake가 할머니가 시켜준 스시 한판을 못먹고 망쳐버리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아이 아까워라 맛나보이는 LA의 스시들.
키사쿠에 갔더니 친구 발레리는 최근에 데이트 하기 시작한 남자를 데리고 와서 난 꽤나 뻘쭘했다. 그러나 뻘쭘한 거와 상관없이 두개씩 척척 내 앞 스시도마에 올려지는 예술적인 스시들. 추운 겨울이랑 생선들이 다 통통하고 꼬돌꼬돌하게 질감도 살아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성게알 초밥은 어제따라 어찌 그리 크리미한지. 쩝쩝쩝. 스시바에 셋이 주르르 앉았는데 내 친구야 데이트남과 닭살행각을 하던말던, 난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시는 스시맨 알프레도(라고는 하지만 일본인이다)님을 우러러보면서 맛이 다른 스시들 하나하나가 입안에서 녹아드는 것을 음미했다. 음음음. 오랫만에 경험하는 미각의 기분좋은 자극에 좀 과장하면 눈물이라도 주르르 흐를 것 같았다.
요새 쫄게 살고 있어서 좋은 점은, 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갔던 (돈 드는) 경험들이 이제는 경우의 수가 줄어드는 바람에, 가끔씩 경험하게 될 때 그 감각의 기꺼움이 배가 된다는 것이다. 전 같으면 밥하기 귀찮을때마다 휘리릭 가서 사먹은 동네 테리야키도, 한달에 한번쯤 가서 먹게 되면 특별나게 맛있는 저녁 성찬이 되고, 스시나 좀 비싼 레스토랑이라도 갈라치면 미각은 혼자서 불꽃놀이다.
예산이 타이트 하게 정해지고 나니까 새로운 레스토랑을 개발하는 것 (잘못하면 맛없는데 돈만 날리게 된다 완전 OTL)보다는 위험부담이 낮게 예전부터 잘 알고 좋아하는 레스토랑만 가게 되는 것은 좀 그렇긴 하다. 이번달에 처음 시도한 레스토랑 중에서 Joule은 별 네개, 시내의 Tap House는 별 마이너스 세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