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rch, 2008

Published by Hisun on 30 Mar 2008

봄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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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아서 집에 있던 화분 두개를 분갈이 해주고, 다른 커다란 관엽식물을 한 개 더 사고, 선인장 한개와 이끼류를 사왔다. 선인장 녀석은 본래 있던 선인장이랑 한 화분에 넣어서 분갈이 하고, 보글보글한 이끼류는 화분도 아니고 화분받침에다 옮겨담아서 거실 테이블 위에 두기로 했는데 정말 귀엽다.

이 동네에 1/2 Price Pots라는 체인이 있어서 화분들을 싸게 파는데, 큰맘 먹고 비싼 화분들을 골라왔더니 자태가 남다르다. 집안에 액센트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너저분하던 코너를 확 정리해주는 느낌이라 좋구나.

Published by Hisun on 28 Mar 2008

집안일 5종세트

바쁘면 집이 엉망이 되고, 집이 엉망이 되면 집에 와서 쉬어도 맘이 편하지 않다. 그러다보면 완전 downward spiral이 되어서 집은 집대로 더 엉망이 되고 피곤한 건 피곤한 대로 더 피곤해진다. 어제 집에 와서 좀 치우고 쌓여있던 다 된 빨래를 개고 해서, 오늘은 훨씬 쾌적해진 셈인데, 아침엔 설겆이도 해서 스스로 대견하다. 그래도 쓰레기 좀 갖다 버리고, 빨래하고 그로서리 쇼핑도 해야한다.

집안일 5종세트 - 청소, 설겆이, 빨래/옷개기/다림질, 쓰레기 버리기, 그로서리 쇼핑. 기본적으로 한주 한주 삶을 유지하기 위한 것만 해도 이 정도다. 요리나 화장실 청소, 철마다 옷가지 챙기기 같은 대단한 것들은 생각지 않고서도 그렇다.

Published by Hisun on 27 Mar 2008

[Mean Girls] - 2004

이번주는 유난히 미팅들이 많아서, 월화수목 나흘 내내 미팅 애프터 미팅, 하루 평균 미팅이 5-6개씩 되었다. 그러다보니 목요일 5시에 회사에서 나오면서는 머릿속은 뇌가 익어버린 것 같고 몸은 너덜너덜하게 느껴졌다. 점심약속 취소하고 금요일은 집에서 일하면서 좀 쉴 참이긴 한데, 그래도 뭔가 그 너덜너덜한 정신적 피곤감을 이길 길이 필요했다.

집에 와서는 저녁을 해먹으면서 쿠키도 굽고 (쿠키 도우가 있어서), 거실을 치우고, 부엌 정리를 좀 하고, 그래도 뭔가 똥꼬발랄한 영화든 책이든 만화든이 필요하던 차에 오늘 도착한 디비디 [Mean Girls]를 보면서 빨래를 갰다. 딱 내가 원하던 똥꼬발랄함.

일단 린지 로한이 저렇게 건강하고 이뻤다니 싶게 싱그럽다. 남주로 나오는 청년도 귀엽고, 모땐 여왕벌 아가씨도 여왕벌 밑에서 시녀노릇하고 있는 두 아가씨들도 이쁘다. 여선생으로 나오는 티나 페이까지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이스쿨물을 편애하는 윰에게 권해주고 싶은 영화다.

그리고 더 좋았던 것은, 영화 배경이 에반스톤이라는 거. 보고 싶은 에반스톤 같으니라고. 거기 살때는 거기가 얼마나 예쁜 동네인지 잘 몰랐는데, 영화에서 다시 보니 정말 중부 답지 않게 동네가 아기자기하게 아담하고 집들이 이쁘다. 노스웨스턴 캠퍼스도 그립고. 노스쇼어 하이스쿨이 어디 있더라???

난 역시 너드 여학생 코드 - 수학문제 챔피온전에 더 꽂히기 때문인지, 주인공이 기존 여왕벌이 아닌 제 3자의 시선으로 서술하는 것이 맘에 들기 때문인지, 혹은 다들 목숨 걸고 있던 퀸의 왕관을 뚜각 부러뜨려버리는 것이 속시원했기 때문인지, 최근에 봤던 [클루리스]보다 [민걸즈]가 훨씬 맘에 들었다.

여튼, 이 영화 보고 활력 회복했다는 이야기. 내일은 미팅 없이 일만 할 수 있어서 좋다. 바쁜 시즌이 시작되었다.

Published by Hisun on 25 Mar 2008

Locked out

중국어 수업도 있는 날이고, 저녁도 밖에서 먹고 들어왔기 때문에 저녁 9시 조금 안되어서 집에 도착했는데 열쇠를 잃어버린 사태를 발견했다. 오늘따라 달라스에 출장 가 버린 곰돌을 제외하고는 달리 여분의 열쇠를 맡겨놓은 데도 없고 난감했다.

결국 콘도 아랫층의 대문은 인터콤으로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서 열고, 윗층에 올라와서 가방을 문앞에 던져놓은 후, 열쇠집 24시간 넘버로 전화를 했다. 늦은 밤인 거 감안하면 굉장히 금방 열쇠 아저씨가 와서 기뻤던 것도 잠시, 문을 드릴로 뚫지 않고 따려고 아저씨가 연장을 아무리 쑤쎠넣고 달각거려도 문이 안 열리는 거다.

근 한시간이나 아저씨랑 문앞에 앉아서 아저씨는 달각달각 거리고 나는 아저씨랑 노가리를 까면서 복도에 주저앉아 노트북으로 내 집 와열리스에 접속해서 웹질을 하고 있었나 보다. 아저씨가 “Let’s get creative!” 하더니 자기 차에 가서 열쇠 펀칭해서 만드는 기계를 들고왔다. 열쇠구멍속의 높낮이를 가늠해서 열쇠를 만들어보고 그 열쇠를 꽂아서 돌려보고 열쇠에 남은 자국을 보고 하는 걸 몇개나 반복하더니 아저씨도 포기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더니 “남친이 열쇠가 있다고 했죠? 전화 되요?” 하더니 전화를 곰돌에게 연결해서 열쇠에 일련번호가 새겨져있는지 물어보았다. 열쇠에 새겨진 번호가 열쇠날의 높낮이를 가르키는 코드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곰돌의 열쇠에 일련번호가 없다고 하는 바람에 곰돌과 말로 “얼마나 높아요? 얼마나 각이 졌어요?” 한참 이야기 하더니, 곰돌이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열쇠를 찍어서 포토 메시지로 내 폰으로 보낸 것. 아저씨는 사진을 보더니 바로 열쇠 만들기에 착수하셔서 두어번의 시행착오 끝에 금세 새 열쇠를 만들어 문을 따 주셨다.

도합 1시간 15분 정도 걸린 셈이고, 예산에 없던 돈이 85불 정도 나갔지만, 도움이 되는 발견은 내 집 문을 도둑이 따려면 시간이 그 정도 걸릴 거라는 것과 이제 새 열쇠가 한 부 더 생겼으니 이걸 담번을 대비해서 옆집에 맡겨놔야겠다는 것.

굳게 잠긴 문 앞에 쪼그리고 한동안 응시하고 있으면서 갑자기 “문”의 의미와 성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문의 완고함, 문의 폐쇄성, 문의 당돌함…. 그리고 내가 닫혀진 문에는 별로 익숙하지 않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Published by Hisun on 24 Mar 2008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내가 김영하의 이 책도 주문했다고 했을때 윰의 반응이 심드렁했다는 걸 간과했다. 같은 김영하의 책이라도 이 책은 과히 실망스럽다.

오늘 출근하며 퇴근하며 버스 안에서 보낸 시간은 합해서 한시간 15분 정도 될 것이다. 그 사이에 다 읽어치울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은 나의 독서 속도를 감안하더라도 책의 밀도가 낮다는 이야기가 된다. [검은꽃]이 고증과 자료수집과 연구를 통해 촘촘하게 짜여진 탄탄하고 묵직한 이야기였다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엷은 공기에서 실을 잡아채 얽어놓은 듯한 이야기였다.

잘 알려진 유럽 회화를 등장시켜 겉멋을 부린다는 혐의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나름 충격적인 소재를 골라다가 부러 논란거리가 되고자 한 위악의 굴레에서도 떳떳치 못할 것이다. 내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소설을 읽은 것인가, 기이한 소재와 묘한 캐릭터들이라는 카드에서도 9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 소설들에 비해 그다지 새롭지도 끌리지도 않았다.

소설 자체의 저가치에 마음이 확 상해 있던 차에 (이 책을 한국에서 공수하기 위해 들인 노력과 돈과 기다림!) 읽은 책 말미의 해설글은 완전 토가 쏠리게 했다. 문학평론가이자 군산대 국문과 교수라는 류보선씨의 글이다. 읽다보면 도대체 ‘한국문학’이라는 것이 무엇이관대 이 책을 읽는 것이 “한국문학사에 등재된 새로운 계보의 발생론적 기원을 탐색”하는 일이 된단 말인가. 평론은 왜이렇게 공허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는가. 도무지 몇번이고 되읽어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수 없는 한 구절을 써본다. 누구 독해력 좋으신 분들 좀 도와주십삼.

“하지만 [파괴]에서 이 두 개의 회화에 대한 묘사는 단지 이러한 서사적 기능만을 담당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낭만주의적인 현실을 신고전주의적 절제로 표현하겠다는 기획”, 그러니까 “세상은 낭만주의 시대의 시간이나 감성처럼 흥청거리며 과장적으로 피와 상처와 좌절을 요구하며 넘쳐흐”르지만 “그것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절제와 감정의 거세를 택하겠다,는 기획”을 드러내는 독특한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죽음을 다룬 두 회화에 대한 묘사는 오로지 죽음이라는 현상을 중심으로 현존재들의 실존은 물론 인류 역사 전반을 맥락화 할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인 기제이며, 이는 [파괴]가 문제성을 확보한 바로 그 요인이다.”

Published by Hisun on 23 Mar 2008

[검은꽃] - 김영하

손에 잡은지 3시간만에 다 읽어버렸다. 어찌나 몰입해서 읽었는지 옆에서 말을 거는 곰돌이에겐 마구 짜증을 부렸다. 한국어로 된 소설에 완전 몰입해서 한국어로 서술된 이미지가 머리속에 가득차 있는데 다른 언어로 된 말을 알아듣고 대꾸해야 하는 것은 자동차 경주 트랙위에서 미친듯 달리고 있는 자동차의 기어를 바꾸는 것처럼 성가시거나 위험한 일이다.

언젠가 김영하씨의 안티구아 집 서재 책상의 사진을 누구에게서 받았었다. 보이는 벽이 다 책으로 그득한 그 서재의 어두운 색깔 목재의 장중하게 생긴 책상에 완전 꽂혀서 나도 지금 컴퓨터를 얹어놓고 쓰는 책상겸 식탁을 샀다. 8인용이나 되는 거대한 식탁을 작업용/공부용 책상으로도 써야지 하고 냉큼 사버린 것이다. 그랬던만큼, 김영하씨의 안티구아 체재가 바로 이 책을 위해서였구나 싶으니 놀랍고도 반갑다.

책의 이야기는 흡입력이 대단하다. 대한제국의 말기에 가난과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멕시코로 노동 이민을 떠나는 한국인들의 이야기이다. 80년대에 [애니깽]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애니깽 농장으로 가기까지 화물선에 짐짝처럼 실려가는 끔찍한 여정부터 이야기를 나를 잡아챘다. 호주에 갔을때 중국 이민사 박물관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이 중국인 쿨리들을 호주 농장의 노동력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사용되었던 선박들의 선실(이라기 보단 ‘우리’에 더 가깝지만)을 재현해놓은 전시였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도 누릴 수 없이 자기 몸뚱아리를 ‘실을’ 자리 한칸씩만 허용해놓은 그 선실들을 보면서, 척박한 환경을 살아남는 인간의 생존력에 경외심까지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중국에서 호주라면 뱃길이 한국에서 멕시코까지의 뱃길에 비하면 반도 안될텐데, 선실의 바닥에 그대로 부려져서 실려가는 천명의 가난하고 아프고 힘없는 조선사람들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 와중에도 자기네들을 황족이며 양반이니 대우해주길 바라는 답답한 인간이나, 농장주에게 빌붙어서 동족을 더더욱 착취하는 인간 군상들도 묘사가 대단하다. 남의 나라에 팔려와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모국은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사라져버리고 남의 나라의 혁명과 내전에 휩쓸렸다가 남미의 정글 속에서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에 대한 일장춘몽같은 이야기가 너무나 생생하게 매력적이어서 다 읽고 나서도 흥분이 잘 가시지 않는다.

김영하씨 대단한 글쟁이인 걸. [퀴즈쇼]도 보고 재미있었지만 [검은꽃]은 비교도 안되게 탄탄하다.

Published by Hisun on 22 Mar 2008

Never get comfortable

지난 달부터 말을 들어왔던 승진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직급내 승진이라서 마소내에서만 효력이 있는 레벨 넘버가 하나 오른 것 말고는 타이틀 변화도 없지만, 대신 연봉이 2년전 AOL에서 받던 것 이상으로 (마침내) 오르고 스톡이나 보너스도 새 기준에서 준해 받게 된다.

어느 모로 보나 시애틀에서의 생활과 마소에서의 일은 불평할 것이 적다. 시애틀의 생활비는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등에 대할 바 아니고, 게다가 주에서 매기는 소득세도 없어서 캘리포니아나 뉴욕에 비하면 우선 먹고 들어가는 셈이 된다. 마소의 연봉도 많지는 않아도 편한 생활을 유지할 정도는 되고, 의료보험이며 온갖 베너핏은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나는 불안하다. 이게 내 길이 아닌데 이 편안함과 쾌적함에 눈이 가리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선택의 순간이 올때 (이미 와있는지도 모르지만) 익숙해진 편안함이 옳은 선택을 우선해버리면 어떻게 하나. 이 편안한 길을 초개같이 버리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전에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으로 샌프란에서 테크 스타텁을 하려던 인물이 말한 자기의 3 원칙이 무척 인상이 깊었었는데,

1. Find a problem worth solving

2. Find people worth working with

3. Never get comfortable

이었다. 특히 세번째 부분. 안주와 전략적 기다림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일까.

Published by Hisun on 22 Mar 2008

책들 도착하였다

지난주말에 알라딘에 주문한 책들이 부모님집을 거쳐서 오늘 나한테 도착했다. 안먹어도 든든한 새 책들이 7권이나 쟁여져있다 집에.  포장을 헤치자마자 꺼내 읽은 책은 박노자의 만감일기. 아껴서 읽어야 하는데 벌써 서른장이 넘게 읽어버렸다.

크고 작은 박스에 담겨서 도착하는 책들을 받는 순간이 참 행복하다. 나에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과거의 순간 중 하나는, 내가 5살 때인가 6살 때인가 우리집 현관문으로 배달부 아저씨들이 커다란 박스 두개에 가득 든 계몽사 소년소녀 문학전집 (총 60권, 30권은 저학년용 파란색 하드커버, 30권은 고학년용 갈색 하드커버)을 지고 들어왔을 때였다. 박스들이 내 방에 부려진 후, 포장을 열고 제일 먼저 꺼내든 책은 소공녀였다. 그 이후로 그 책들을 다 읽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는데, 항상 집에 읽을 새 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기분이었는지.

대학교때는 친구들과 “할인점 쇼핑카트를 몰고 교보문고에 가서 맘에 드는 책을 죄다 담아서 나왔으면 좋겠다”라는 둥 하는 말을 했는데, 요새는 어디 펭귄북스나 이런 데서 내가 안 읽은 책들만 쌰샥 모아서 ‘맞춤전집‘을 만들어서 싸게 팔아줬으면 좋겠다. -_-;;;

Published by Hisun on 20 Mar 2008

맞벌이와 부양 책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http://theonion.egloos.com/4236060
(집에 가서 쓰겠다고 뻥쳐놓고 그동안 내버려 두고 있어서 송구스럽…)

내가 스토킹 하고 있는 양파님의 블로그에서 논란이 된 글은, 본래 마이클럽인지에 자기가 벌고 남편이 전업주부(夫)로 살고 있는 집의 와이프가 남편이 돈을 안벌어오니까 자기에게 부양의 의무가 전가되어 그 부담감에 대해서 원색적으로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집에서 놀고 있는 남편이 꼴도 보기 싫다라든가 한심해서 죽겠다라든가 심한 언사도 많지만 이해가 안가는 내용은 아니었다. 근데 한번 더 생각해 보면 그럼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전업주부를 하는 집은 남편들도 아내를 보면서 그렇게까지 생각을 할까 하는 거다. 그렇게까지가 아니라면, 그럼 왜 돈 벌어오는 남편이라는 성역할은 그렇게까지 당연시 되고 있는지, 왜 똑같이 직장생활 하면서 아내/여성의 직장생활은 부가적으로 “자아실현을 위해”라는 식으로 (다시 말하면 가족의 생계가 걸리지는 않은 것으로) 가볍게 여기게 되는 것인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얼마전에 곰돌 아버님이 직장을 옮기시면서 한 두어달 공백기가 있는 기간이 있으셨다. 곰돌 아버님은 에어포스에 오래 계시다가 전역하신 후에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Supply chain 담당 중역을 오래 지내셨고, 그 뒤로는 메드코에서 비슷한 일을 하시다가 이번에 도로 아메리칸 이글 항공사로 옮기셨다. 곰돌 어머님은 역시 에어포스 출신이신데, 지금은 회계사이시고 작지만 건실한 회사에서 많지는 않지만 걱정 없이 버신다. 근데, 두 분 다 에어포스 연금을 지금 당장 퇴직해도 될만큼 받으시고 생활비 부담도 낮은 달라스에 사시는데도, 아버님이 새 직장을 구하시는 그 두어달 간 (와중에 퇴직 패키지도 두둑히 받으신 상태였다) 어머님이 꽤나 혼자 돈 버는 “가장”이 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으셨다는 거다. 고로 그 가장의 부양 책임이라는 것이 당장 식구들 먹여살릴 돈에 대한 스트레스라기 보다는 심리적인 부담이 더 크다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저 글과 댓글들을 읽고, 그 전부터도 이야기 해봤던 거지만, 곰돌한테 이야기를 한번 더 꺼내봤다. “내가 결혼해서 집에서 놀면 얼마동안 맘 편하게 봐 줄 수 있을 거 같애?”라고 했더니 제일 먼저 “그 논다는 것이 새 사업구상이냐 재충전이냐 풀타임 엄마 노릇이냐 혹은 그냥 나자빠지는 거냐에 따라 다른데 어떤 걸 말하는 거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재충전이라고 생각하면?”이랬더니 1년 정도는 맘편하게 부양이 가능하나 그 이상은 부담스러울 거란다. 그래서 “겨우 1년이야? 2년도 아니고?” 이랬더니 그럼 바꿔놓고 생각해보라는데, 정말 바꿔놓고 생각해 봤더니 곰돌이 집에서 풀타임 대디로 있는다고 해도 경제활동이 없다면 나도 2년은 혼자 벌어서 부양하기 짐이 될 거 같았다. 곰돌은 내가 풀타임 맘으로 있는다면 애들이 클 때까지는 자기 혼자 부양 가능하나 내가 내 성질에 답답해서 못 살 거라는 거 이미 보인단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경제활동 없는 재충전을 15개월씩까지는 봐주기로 결론 내렸다.

미국에도 외벌이로 사는 집이 가끔 보이긴 하나, 그건 한쪽이 정말 많이 벌어서 다른 쪽이 애들 잘 챙기고 집 잘 돌보는 편이 나을 때거나, 아니면 버는 돈이 데이케어 같은 데에 애들 보내는 비용보다 많지 않아서 아예 포기할때 정도인 거 같다. 보통은 힘들어도 맞벌이하고 애들은 생후 3-4개월부터 데이케어 보내고 한다. 맞벌이를 해야 겨우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이 되는 경제적 상황도 그렇고, 애들을 픽업해야 한다고 하면 오후 3-4시에 집에 가도 별 말 없는 직장에서의 전체적 동의나 출산휴가, 데이케어 시스템의 편의성 등등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되어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일하는 엄마의 죄책감” 같은 것도 훨씬 덜 하고, 육아의 부부 분담도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잘 되어 있다.

이렇게 맞벌이와 육아/가사 분담이 잘 되어 있는 미국에서도 아직 “bread winner”의 성역할이 남편에게 맞추어져 있는 것을 보면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곰돌이랑 제일 친한 친구네 가족은 엄마가 노키아의 부사장이신데 압지도 할리버튼 다니셨지만 압지가 애들 보고 집안 꾸리는 걸로 선택하셔서 집에 들어앉으셨다고 한다. 부사장 정도 되는 위치와 그 정도 수입이 되어서야만 그 성역할 전환을 이룰 수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나부터도 맘편하게 곰돌에게 “아 니가 집안일을 하고 애들을 키우고 싶으면 전업주부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나마 미국에서는 “당연히 남자가”라는 당위가 “왜? 바꿔서 생각해봐.”라는 도전을 받게 되는 것만큼은 고무적이라고 할까. “당연히 남자가”라든가 “여자가 감히”라는 것들의 감옥에서 우리도 이젠 조금씩 솔솔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가난한 남편이 못 벌어서 못 먹여살리겠으니 헤어지자고 하는데 슬프게 울기만 했다는 내 친구의 꿈 이야기에 “니가 먹여살리겠다고 하면 되지. 사고방식 한번 참 후지네.”라고 했다는 친구 남편 말씀이 명언이다.

Published by Hisun on 18 Mar 2008

사회학적 소양

아침에 출근했더니 저 혼자 켜져있던 구글톡에 친구 윰으로부터 “어떡해 굴네 사무실에 박노자가 와 있대!”라는 메시지가 와 있다. 굴은 친구 윰이 여전히 홀딱 빠져있는 남편, 좋은 인문학 출판사에서 일하신다. 이 메시지와 아침에 기원의 글에 내가 댓글을 달면서 쓴 “전체주의”라는 단어에 대해 책임을 느낀 것 때문에 박노자의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글을 좀 찾아 읽었다. 난 아무래도 박노자 팬이 되려나 보다.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나는 중고등학교때 인문학 특히 사회학 책들을 좀 더 읽었었으면 좋겠다. 책 많이 읽는다고 읽었는데, 읽는 분야가 문학과 과학에 한정되어 있어서, 사상과 철학 부문에 가면 난 완전 백치. 수학의 정석을 2-3년 미리 다 떼고, 물리 올림피아드에 나가라고 독려하는 선생님들 대신에 좋은 사회학 책들을 읽히는 선생님들을 만났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한다. 소시민적인 우리 부모님 사회학은 “빨갱이들이나 보는 책”이라고 생각하셨고, 주변에도 제대로 된 사회인문학 공부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과학고 자습실에는 이상문학상 수상전집이 한질 있었는데, 걔네들을 목마른 사람 우물 파듯이 읽은 기억만 난다.

더더욱 문제인 것은 중고등학교때의 독서 편식이 이후의 독서 취향에도 영향을 미쳐서, 지금도 사회과학책 들은 왠만큼 재미있지 않고서는 잘 읽어줄 수가 없다는 점이다. 만연체 문장이나 특히 번역체 문장이면서 만연체이기도 한 책을 읽다가 인내심이 금세금세 바닥나서 집어던져버리게 된다 (예 - 보들리야르의 [시뮬라시옹], 푸코의 [성의 역사]).

무슨 학습지 요약학습 하듯이 [20세기 사상들] 이런 책들 좀 읽고 사회학적 소양을 좀 수혈받아야겠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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