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pril, 2008

Published by Hisun on 30 Apr 2008

Downtown office

마소도 시애틀의 교외 타운인 레드몬드에 헤드쿼터가 있는데, 젊은 사람들은 시애틀 시내에 많이 살고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호수를 건너 회사쪽인 Eastside에 많이 살아서 항상 왜 시애틀에 사는 사람들은 배려를 안해주냐라든가 하는 불평불만이 많고, 또 어느 그룹에서 다운타운 시애틀에 오피스를 내면 시애틀 사는 사람들은 부러워하고 이스트사이드 사는 사람들은 도시쪽으로 출퇴근 교통을 걱정하면서 불평하는 일이 많았다. 그 불평불만들을 종합하여 우리의 heroin인 새 HR VP 리사 브루멜 아줌마가 최근에 이것저것 시도하는 일이 많다. 회사 셔틀을 시애틀을 비롯하여 서벌브 방방곡곡으로 보내어 애들을 실어나른다던가 등등 하루하루 나아지는 중이다.

요번엔 시애틀 시내 새로 생기는 South Lake Union 구역에 새로 빌딩을 하나 리스하는가 싶더니, 여기 들어오는 그룹이 아니더라도 하루치기씩 와서 근무할 수 있는 touchdown office를 만들었다. 궁금하던차에 오늘 할일도 많고 하여 오피스는 스킵하고 여기로 와서 쳐박혀 일하려고 하는데, 위치가 너무 좋다. 데니를 따라 내려와서 새로 생긴 홀푸드 마켓에서 호수쪽으로 꺾으면 2블록 안에 이 빌딩이 있네. 요 빌딩에서 한블럭 떨어진 곳에 콘도를 살까 말까 하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봐야 하나? 훤한게 트인 창에 분위기도 좋고, 점심 먹을 거리 많고 (홀푸드), 집에서도 걸어서 15분 거리 정도…. 자주 애용해줘야겠다.

Published by Hisun on 29 Apr 2008

Pico Iyer @ Seattle

전부터 티켓을 사두고 기다리던 피코 아이어의 시애틀 강연에 다녀왔다. 피코 아이어는 여행작가로 유명한데 난 그의 [Falling off the map]이라는 책의 첫 챕터가 북한이라는 사실에 흥미가 생겨서 그 책을 책방에 서서 두어 챕터 읽었었다. 오늘 알게 된 것은 이 사람이 인도인 부모님에게서 영국에서 태어나서 캘리포니아에서 자란데다가 지금은 일본인 파트너와 일본의 시골에 살고 달라이라마를 추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적이나 민족, 종교, 살고 있는 곳으로 identifying 하자면 참으로 복잡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의 강연도 사실 그 점에 대한 거였다. 그는 다소 캐치한 서두로 강연을 시작했는데, 그건 "Travel writing is dead."였다. 그의 포인트인즉슨, 예전에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려고 여행을 했다면, 요새는 그 메리트가 글로벌라이제이션, 인터넷이나 디스커버리, 트래블 채널 등에 의해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멀어지자고 여행을 가도 도착지의 공항에서 제일 먼저 보는 것은 맥도날드, 스타벅스, 월마트이고, 자신이 직접 가는 것 보다 더 칼라풀한 체험을 요새는 자기 집 거실에서 할 수 있다. 그럼 왜 지금 같은 세상에서 여행은 가는가? 피코 아이어는 이제 sense of transporting가 아니라 sense of transforming이 여행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집에서는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와도 무상히 넘길 것들에 여행을 떠남으로 인해 더 receptive해지고, 태도상 자기가 이해하지 못한 것에 surrender하기 더 쉬워진다. 병자가 침대를 옮기면 somehow 병이 나을 거라고 믿는 것과 같다고 농담했지만, 여행을 통해서 전혀 다른 정신상태로 스위치 함으로 인해서 평소보다 자신에게 더 많이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자신과 주위에 대한 발견으로 인해, 여행에서 돌아올때는 아무리 작은 변화라 해도 떠났을 때와는 조금 다른 자신이 되어서 돌아온다는 것이다.

 

트래블 라이팅은 피코 아이어에 따르면 제국주의의 부산물로,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영국이나 식민 제국의 작가들이 자기네들의 식민지나 그 근처 나라들, 혹은 ‘오지’를 ‘탐험’하면서 그 곳의 풍습과 생활이 본국과 얼마나 다른가를 때로는 경의의 눈으로, 때로는 내려다보는 눈으로 서술한 것이 대분분이었다는 것. 피코 아이어는 그럼 이제 21세기의 초반에서 독일 남자와 필리핀 여자 사이에서 난 호주에서 사는 젊은이가 여행을 보는 눈은 어떠할 것인지를 묻는다. 오랫동안 우리들의 아이덴티티의 큰 축이었던 국적과 고향과 민족이 이런 하이브리드들에 의해서 경계가 희미해질때 우리는 universal한 인간으로서의 열망에 더 궁금해지고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그에 준해 정의하게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그는 또 irony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세계가 지구촌으로 점점 더 가까워지고 티비만 켜면 지구 반대쪽의 일을 알 수 있게 된 지금, 그 illusion of closeness로 사실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더 흔하지 않게 되고, 여행을 많이 할 수록 여행이 더더욱 ‘home’ - a place to come back에 대한 것이 된다는 것. 전에 어딘가 여행갔다가, 왜 세상이 편해져서 여행여정이 편해질 수록 정작 그 journey 자체 (이코노미 클래스에 10시간을 찡겨있다거나)는 참아내야할 어떤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인가 그 아이러니함 (몇달씩 걸리는 마차 여행을 즐겼던 옛사람들을 생각하면)을 생각한 적이 있어서 여행의 아이러니들에 고개 끄덕했다.

 

알고보니 피코 아이어의 출세작은 [Video Night in Katmandu]라는데 이것부터 읽고 싶어졌다. 피코 아이어에 대한 정보는 http://en.wikipedia.org/wiki/Pico_Iyer. 11월에는 같은 강연 시리즈로 존 업다이크가 시애틀에 온다 (눈 하트모양). 꼭가야지.

Published by Hisun on 29 Apr 2008

Music-deprived

집에 전에 있던 소니의 theatre system, DVD 플레이어가 고장난 이후 스피커들을 떼어서 쳐박아두었다. DVD 플레이어는 봉신언니가 전에 쓰던 멋진 넘을 하나 주셨지만, 스피커 도로 달기가 귀찮아서 음악없이 살았더니 요새 music-deprived였던듯. 승원 덕에 알게된 Britain’s Got Talent 쇼에 나온 Charlie Green군의 Summer Wind에 완전 중독되어서 그 짧은 비디오를 몇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http://www.youtube.com/watch?v=6gX5F27DfsM 목소리 너무 좋다. 음반 내면 꼭 사야지.

언제 시간내서 스피커들을 도로 연결해야 하는데, 선 연결하는 것이 귀찮아서 미루고 있다. 블루투스 무선 스피커들과 iPod/컴터를 사용한 audio-equipped house는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연구해봐야겠다. 곰돌은 소리가 또렷하게 잘 나오는 알람 라디오를 주문했는데 그건 그 시스템에 연결 안되나? 흠.

@곰돌이 몇달째 부탁하고 있는 곰돌 블로그도 만들어줘야 하는구나.

Published by Hisun on 29 Apr 2008

밤새고 난 담날

월요일까지 해놓을 일이 있어서 일요일 밤에 밤을 꼴딱 새고 자정에서 한 6시까지 달려서 일을 다 해놓고 회사 갔다 한 5시쯤 집에 온 것까지는 좋았다. 근데 너무 피곤해서 버스에서도 거의 내내 꾸벅꾸벅 졸더니, 집에서는 오자마자 실신해서 무려 13시간 반을 불편한 카우치에서 완전 pass out. 역시 몸이 늙는 거 같애.

@토요일부터 시작한 다이어트 화요일 아침까지 5파운드 빠졌다. 일단 constant upward streak을 꺾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ㅠ_ㅠ

@@다이어트 때문에 집에 Folgers 커피를 조그만 거 하나 사다놨는데 (한국으로 치면 맥심/맥스웰), 오랫만에 espresso 아니고 그렇다고 espresso에 물타서 만든 아메리카노도 아니고 brew coffee도 아닌 커피를 마셔본다. 이것도 물 많이 타서 엷게 만드는 커피에는 나쁘지 않다. 아 그러고보니, 엄마 오시기 전에 엄마 취향 “맥심커피믹스”도 사다놔야한다. OTL

Published by Hisun on 27 Apr 2008

요새 한국 언론은 블랙개그가 유행?

http://issue.media.daum.net/economic/beef_import/view.html?issueid=3161&newsid=20080428061012078&cp=yonhap

‘선구적’이란다. 기자분이 비꼬는 것이라고 믿자.

Published by Hisun on 27 Apr 2008

주말

곰돌이는 토요일 점심때 독일의 울름으로 떠나서 다음주 목요일이나 되어야 돌아온다. 간만에 찾아온 혼자의 고요한 주말이나, 지난 금요일까지 해놔야 했던 일을 주말까지 끌고 있어서 아마도 일요일인 오늘 밤 늦게까지 일하지 싶다.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요새 이런저런 일들로 너무 고삐를 놨더니 몸이 무겁게 느껴져서이기도 하고 결혼식 리셉션까지 6주밖에 안남았다는 자각도 했고. 일단 다음 2주간 저칼로리 식단을 운영하고 운동도 슬슬 병행할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어깨랑 팔뚝 운동을 좀 해줘야 쓰겠다. 아무리 웨딩 드레스를 안입는다고 해도 칵테일 드레스라도 입으려면 겨드랑이 살은 좀 빼줘야하는 것이 예의인듯.  -,.- 그래서 다이어트 이틀째인데, 식단대로 먹고 있으려니까 음식에 대한 집착 장난 아니게 된다. 매 끼니때마다 주어진 식단을 어떻게 풍성해 보이게 싫증 안나게 만들어서 먹을까 연구하고 있다.

신혼여행은 동남아 여행가이드책을 사서 방콕으로 들어가서 말레이반도를 타고 내려가 싱가포르에서 나오는 라우트를 알아보고 있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떼 생각에 캄보디아는 정이 떨어졌다.) 어제랑 열심히 인터넷에서 타일랜드랑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여행기들을 읽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타일랜드의 불교 사원들 멋진 건 알겠는데, 말레이시아의 회교 사원들은 왠지 현대적인 콘크리트 건물을 짓고 그 위에다 모스크 돔만 얹어놓은 듯 해서 별로였다. 싱가포르야 쇼핑몰인 거 익히 들어왔으니 여행 마지막에 하루 정도 둘러보는 것으로 족하리라. 타일랜드에서는 방콕과 어딘가의 하얀모래 비치에 가고 싶은데, 문제는 여행객 많지 않고 그다지 상업적이지는 않은데,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하얀 해변을 찾는 것이다. 푸켓은 너무 리조트 촌이고, 코사무이는 모래사장보다는 돌로 이루어진 해안 사진이 더 많다. 코피피나 코따오는 어떤가 궁금해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2억년간 보존되어 있다는 열대우림 타만 네가라에 가고 싶다. 음식 문화가 훌륭하다는 페낭에도 가고 싶은데, 그건 Priority 2. 들어가는 데와 나가는 데를 다르게 하니 비행기표값이 너무 비싸져서 고민중이기도 하다. 부산출발 방콕 왕복은 한 30만원대면 되는듯한데, 부산-방콕, 싱가폴-인천으로 끊으면 (이렇게 하면 시간은 가장 많이 세이브된다) 100만원대가 된다. 최대한 잡아봤자 열흘짜리 여행인데 많이 보고 싶은 욕심만 앞서서,  아니 이럴 바에야 다 때려치고 몰디브에서 심심한 나흘을 보내고 대신 잘 쉬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도로 생각.

Published by Hisun on 25 Apr 2008

Wedding bands

금요일 좀 일찍 퇴근해서 곰돌과 결혼 반지를 사러 갔다. 보석에 관심 없는 우리들이라 좋은 보석가게를 아는 데도 없고 찾아보기도 귀찮아서라도 그냥 시애틀 시내의 나란히 붙어있는 두 가게 중에서 보고 결정해버렸다. 상업적인 자본에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되어버리지만 귀찮아서 어쩔 수 없다. 전에 봐두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일사천리로 척척 결정해서, 계산하고, 반지 안쪽에 새겨넣을 글자 타입페이스와 문구를 정하고  하는데 채 20분이 안 걸린 것 같다. 아마 세일즈퍼슨 입장에서도 우리처럼 애 안먹이고 결정 잘하는 손님들은 반가울 것이다. 문구도 그냥 간단히 서로의 이름을 상대방의 반지 안쪽에 새겨넣은 것 정도다 (글자당으로 가격이 매겨지므로 최대한 짧게 했다).

weddingring1.jpg

곰돌은 아주 클래식한 플래터넘 반지 아무 장식도 없는 묵묵한 넘으로, 나는 약혼 반지에 어울리는 얇다란 백금반지에 먼지 한톨 콕 박힌 녀석 (사진)으로 했다.

결혼 준비 또 하나 끝냈다. 다음은 곰돌 양복과 내 드레스 사기 일텐데, 그건 다음달 쯤 해도 되겠지.

Published by Hisun on 25 Apr 2008

알랭 드 보통과 [행복의 건축]과 내가 짓고 싶은 집

알랭 드 보통을 처음으로 읽은 것은 그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그때만 해도 아 좋은 에세이스트구나 정도였는데, 완전히 나를 녹다운 시킨 것은 그의 [여행의 기술]이었다. 여행사 팜플렛에서 본 발베이도스의 사진이 어떻게 기대를 창조해내고, 기대에 부풀어 여행을 떠났으나, 왜 정작 여행지에서 너무 따가운 태양아래서 생각하는 것은 두고온 것들일 수 밖에 없는가를 수려하게 기술한 장도 완전 맘에 들었다. 게다가 런던을 가야겠어라고 생각해서 하인과 짐을 다 준비해서 기차를 기다리며 런던식 펍에 들어갔다가, 런던이라는 여행의 목적지가 약속하는 경험들을 하나하나 곱씹어보고선 귀찮아지고 그런 경험은 집에서도 할수 있다고 결론내려서 도로 집으로 돌아가버렸다던 옛사람의 일화도, 여행을 좋아하지만 또 여행 생각에 귀찮음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 것은 아닌 (여행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는 신성모독스러운) 자가당착적 고민으로 번뇌하던 나에게 와닿았고.

이번 책 [행복의 건축]은 몇달전에 한국에서 주문해 놓고는 소설책들에 밀려서 한동안 읽지 않고 박아두었다가 요 며칠 사이에 피곤하고 힘들때 자기전에 찔끔찔끔 읽었다. 문장이 수려하고 아이디어들이 영양가가 많아서 회사 일에 쩔어 있을 때 읽으면 특히 좋았다.

책의 메인 아이디어는 “어떤 공간과 어떤 희망이 일치했을 때,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 부른다”라는 명제다. 아름다운 건축이라는 것은 우리의 숨겨진 열망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  혹은 우리가 우리 삶에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은 어떤 특질에 대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왜 자연과 전혀 멀어진 20세기 후반의 집들이 자연적인 모티브와 건축자제에 열광하고 있는가 (자연을 거기서라도 느끼기 위해서)라든가 왜 18세기 이전의 부르조아들이 장식적인 건축물을 사랑했는가 (일상생활에서도 질병과 폭력의 위협을 느꼈던 이들에게 꽃을 든 천사의 모티브는 평화와 안정의 상징) 등등을 예와 함께 서술해나간다.  

읽고 있으면 저절로 아니 내 집은 그럼 나의 어떠한 특질, 어떠한 열망을 나타내고 있는가 싶어져 버리는데, 지금 살고 있는 성냥곽 같은 콘도가 아니라 제대로 원하는 대로의 집을 평생에 한 번은 짓고 싶어졌다. 그러자니 또 그럼 같은 도시에 오래 살아야 할 커밋먼트가 생기는 셈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생각을 해보니 답답하기도 하지만…

내가 짓고 싶은 집은 창이 크게 햇볕이 잘 들고 광택제를 칠하지 않은 나무바닥에 시원시원한 구조의 집이다. 볕이 잘드는 나무 바닥에 배를 깔고 책을 읽고 싶고, 책을 읽다가 싫증이 나면 양지 바른 툇마루에서 미풍을 맞아가며 낮잠을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들이 한 벽 가득 한 방 가득 있어서 책들에 둘러싸여서 휴일 오후를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넓직한 작업대 책상이 있어서 마음껏 어지르면서 공부하고 생각하고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있어서 쓱쓱쓱 스케치나 생각정리를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고정된 바닥의 개념을 벗어나 살짝 밑으로 꺼지는 거실의 꺼진 단면에 책장을 짜넣는다거나, 욕실 욕조가 바닥에서 깊이로 떨어지는 것이면 좋겠다. 난 책 읽으면서 오래 목욕하는 것도 좋으니까 욕실도 빛이 잘들고 큼직하면 좋겠다. 침실에는 창문을 열어두어도 먼지와 소음이 많이 들어오지 않으면 한다. 호텔 침대처럼 편한 침대에 깃털 베개를 두고 (웨스틴의 헤븐리 베드 원츄) 침대는 방 한가운데에 터억 놓을 테다.

생각해보니 재미있네. 나의 테마는 책읽기 좋은 곳, 쉬기 좋은 곳, 작업하기 좋은 곳 정도로 요약 되는데, 알랭 드 보통의 이론에 따르자면 그것들이 내가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나에게 부족하여 열망하는 특질이라고 하니, 난 스스로 책을 안 읽고 있고, 잘 못쉬고 있고, 집에서 작업을 잘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재밌다. 곰돌에게도 짓고 싶은 집의 이상에 대해서 물어봐야겠다.

Published by Hisun on 25 Apr 2008

왜케 피곤하대

샌프란에서 돌아온 후 지난 일주일 내내 뭐 빡시게 하는 것도 아닌데, 한 주 내내 피곤에 쩔어서 살았다. 급기야 어제는 맛난 저녁을 얻어먹고 집에 돌아온 뒤 바로 뻗어서, 저녁 6시반에서 오늘 새벽 6시반까지 12시간을 내리 자버렸다. 그러고 났더니 겨우 오늘 아침에 회사갈 힘이 나네. 이것 다 주중에 백투백으로 미팅으로 꽉찬 스케쥴이라서 그런 거 같다. 요샌 어찌된 일인지 미팅만 들어갔다하면 내가 주도해야 하는 일이 잦아서, “들어가서 듣고만 나오기” 같은 편한 미팅이 잘 없다. 그러다보니 미팅을 하루종일 하고 나면 정기를 쪽쪽 빨려서 빈껍데기만 집에 돌아온다. -_-;;; 그렇다고 미팅 횟수를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인데 (싱크업 해야 할 인간들이 하도 많아서), 정작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할 시간은 미팅이 차지해버려 없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 오죽하면 금요일 마감인 다큐먼트를 사실은 토요일 일요일날 일해서 써버리려고 맘먹고 있겠나. 아쒸.

Published by Hisun on 23 Apr 2008

일신우일신

  1. 왜인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도 “해가 갈수록 날이 갈수록 점점 나아져야 한다”라는 강박이 있다. 그럼 뭐가 나아져야 하는가라고 물으시겠지만, 그건 또 대답하기 어렵다. 다만 이제까지의 경우,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통해서나 이직/경력축적을 통해서 더 포괄적인 일을 하는 방향으로 (pigeon hole에서 벗어나고자) 나아가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오늘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서, 요번에 넣은 MBA 파트타임이 합격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학교를 풀타임으로 넣을 것인가, 아님 때려치우고 생업에 종사할 것인가 따위를 생각하다보니, 단지 요번만이 아니라 MBA가 되고 나서라도 그 뒤로는 Ph.D.를 하지 않는 이상, 교육에 의한 상향 점프가 더이상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꽤나 막막하게 다가왔다. 교육 지상주의에 물들어 있어서 그런지, 더 이상 제도적인 교육 (대학/대학원)을 더 받을 것이 없다는 것은 뭔가 허전하다. 그런데 다시 생각을 해보면 새로운 학위증이나 자격증에 의존해서 (물론 그 “쯩”이 상징하는 지식의 습득) 상향 점프를 하겠다는 것도 검증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모르는 것이 백만개인 새로운 분야 (나의 경우 비지니스)의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는 방법으로는 학교를 도로 다니는 것이 제일 효과적일 것이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새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여 하이브리드가 되는 것은 잡 마켓에서의 나의 agility를 높여줄 수 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그야말로 그 새 분야에 처음 발을 담글 수 있게 해주는 최소의 조건일 뿐일 것이다. 일에 일가를 이룬 사람들 조사에서, 일 자체에서 배우는 것이 70%, 일 같이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20%, 교육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10%라고 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새 분야의 교육을 받는 것과 직업적 성장을 동일시 하여 환타지를 갖고 있는 것일까.
  2.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스스로 일반인의 평균치 보다 똑똑하고 빠릿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처음 회사에 들어가서 (것두 75년묵은 느려빠진 대기업) 승진하고 일배우고 하는 기간이 너무너무 참을 수 없이 느리다고 느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큰 그림인데, “말단사원”이라는 무거운 돌덩이를 달고 있어서 위로 올라가서 보고 싶은 걸 볼 수 없는 그런 느낌. 올해로 회사 생활한지 6년째 되는데, 연봉 인상은 시골 시애틀에서 살면서는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수준이지만, 여전히 ‘큰그림’ (이게 파워와 동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에 대한 갈증은 제대로 따라잡고 있지 못하다. 다만 이제 내가 파뒤집고 들어가서 큰그림에 대한 나의 관점을 제시할만한 채널들을 개발하고 있는 것만은 고무적이다. 그리고 지금은 내 윗사람들이 나보다 대단하고 존경이 가지만, 첫직장이었던 모 대기업에서는 내 윗사람이 부실하고 우유부단하고 무능한데 내 앞길만 가로막고 있는 사람이었던 점도 조바심에 한몫했다. 어쨌든, 그 현실에 대한 impatience가 학위를 한개 더 받으면 (비지니스든 로스쿨이든) 가속을 받아 쓕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환타지를 부추긴다. 주위를 보면 이런 사람이 나 만도 아니다. 특히 카이스트 졸업생이나 서울 공대 졸업생들 중에서 많이 본다.
  3. http://hambition.blogspot.com/2008/04/on-right-timing.html   모님의 블로그에서 지식 산업 사회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destroy/reconstruct하는 용기와 실천이 필요하다는 글을 읽고 고개도 끄덕 하는 동시에 최근에 읽은 자유무역/보호무역에 대한 두 권의 책 생각이 났다. [세계는 편평]에서 토마스 프리드만은 destroy/reconstruct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글로벌 경제의 습성에 대해서 설파하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장하준씨는 고무장화 만드는 회사에 17년간 적자 투자를 해서 세계 최대의 휴대폰 업체로 거듭난 노키아의 예나, 양잠을 특기로 가지고 있었는데 40여년간 비난을 무릅쓰고 적자 투자를 한 끝에 자동차 산업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린 일본을 예로 들면서 지금 잘하고 있는 뭔가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를 destroy/reconstruct 하는 것과 그것에 필요한 적절한 인큐베이션을 이야기 한다. destroy/reconstruct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는 한다해도, 계속 그렇게 스스로를 리인벤트 해야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은 어쩔 수 없다. 그 피로감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어디에 있는가, 사회는 그 리인벤트에 대한 incentive나 encouragement를 어떻게 지급하는가. 혹은 최근 한국에서 자주 보이는 석박사까지 마친 공대생이 로스쿨이나 의대 공부를 다시 하는 것은 그 destroy/reconstruct인가 아니면 주변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wasteful re-engineering인가. 내가 지금 cash-out을 그럭저럭 잘 하고 있다면, 하고 있는 일에 올인해야 할 것인가, 아님 cash-out은 그것대로 하면서 다른 브랜치를 recontruct하고 있기도 해야 할 것인가.
  4. 위의 모님의 다른 블로그 포스팅에도 있다시피, 이런 변화에 대처하는 대인배의 자세는 부의 향방에 상관없이 스스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데에 있을 것이다. 얼마전에는 딴지총수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칼럼을 윰의 소개로 읽게 되었다. http://www.hani.co.kr/arti/SERIES/153/282322.html 그 중에서 맘대로 인용해보면,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건 그렇게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그 기본 태도에 관한 입장이어야 한다. 우린 그런 거 안 배운다. 대신 성공은 곧 돈이라는 거. 돈 없으면 무시당한다는 거. 그 경쟁에서의 낙오는 인생 실패를 의미한단 거. 그렇게 경제논리로 일관된 협박과 회유로 훈육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초식동물처럼 산다. 초식동물의 군집은 가장 뒤처지는 놈이 포식자의 먹이가 되어 나머지의 안전이 잠정 담보되는 시스템이다. 거기 공적 신뢰 따윈 없다. 결국 끝줄에 서지 않으려 끊임없이 서로를 경계하며 두리번거리는 왜소하고 불안한 낱개들만 남을 뿐.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시도할 겨를도 없고 엄두도 안 날밖에. 우리네 평균적 삶이 그렇다. 여기까진 위로다. 갈피를 못 잡는 건 당신만이 아니란 거다.

그러니 이 땅에서 어떻게 살 건지는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게 자신이 무엇으로 만들어진 인간인지부터 아는 거다. 언제 기쁘고 언제 슬픈지. 무엇에 감동하고 무엇에 분노하는지. 뭘 견딜 수 있고 뭘 견딜 수 없는지. 세상의 규범에 어디까지 장단 맞춰줄 의사가 있고 어디서부턴 콧방귀도 안 뀔 건지. 그렇게 자신의 등고선과 임계점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윤곽과 경계가 파악된 자신 중, 추하고 못나고 인정하기 싫은 부분까지, 나의 일부로,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전혀 멋지지 않은 나도 방어기제의 필터링 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되는 지점, 그런 지점을 지나게 되면 이제 한 마리 동물로서 자신이 생겨먹은 대로의 경향성, 그런 경향성의 지도가 만들어진다.


거기서부턴 더이상 자신에 대해 관심이 없어진다. 더이상 자기합리화나 삶에 대한 하찮은 변명 따위에 에너지 소모하는 일, 없어진단 이야기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에너지는 생겨먹은 대로의 나를 세상 속에서 구현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더이상 눈치 보거나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 다음부턴 쉽다. 꿈이니 야망이니 거창한 단어에 주눅 들거나 현혹되거나 지배당하지 말고, 그저 자신이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 가보고 싶은 곳들, 만나보고 싶은 자들 따위 리스트를 만들라. 그리고 그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라. 사람이 왜 사느냐. 그 리스트를 지워가며 삶의 코너 코너에서 닥쳐오는 놀라움과 즐거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만끽하려 산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건투를 빈다.”

과연 그런 것인데, 그럼 리인벤트에 디스트로이/리컨스트럭트를 한다고 해도, 스스로 맘에 들고 정이 가는 방향으로 해야 피로감이 덜어지는 것이 아닐까. 일테면 “해야하는” 방향이 아니라 “하고자픈” 방향으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오랫만에 오늘 집에 가면 죽기 전에 할 100가지 리스트나 다시 들여다 봐야겠다. 죽기 전에 가고 싶은 곳 리스트도 좀 더 써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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