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을 처음으로 읽은 것은 그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그때만 해도 아 좋은 에세이스트구나 정도였는데, 완전히 나를 녹다운 시킨 것은 그의 [여행의 기술]이었다. 여행사 팜플렛에서 본 발베이도스의 사진이 어떻게 기대를 창조해내고, 기대에 부풀어 여행을 떠났으나, 왜 정작 여행지에서 너무 따가운 태양아래서 생각하는 것은 두고온 것들일 수 밖에 없는가를 수려하게 기술한 장도 완전 맘에 들었다. 게다가 런던을 가야겠어라고 생각해서 하인과 짐을 다 준비해서 기차를 기다리며 런던식 펍에 들어갔다가, 런던이라는 여행의 목적지가 약속하는 경험들을 하나하나 곱씹어보고선 귀찮아지고 그런 경험은 집에서도 할수 있다고 결론내려서 도로 집으로 돌아가버렸다던 옛사람의 일화도, 여행을 좋아하지만 또 여행 생각에 귀찮음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 것은 아닌 (여행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는 신성모독스러운) 자가당착적 고민으로 번뇌하던 나에게 와닿았고.
이번 책 [행복의 건축]은 몇달전에 한국에서 주문해 놓고는 소설책들에 밀려서 한동안 읽지 않고 박아두었다가 요 며칠 사이에 피곤하고 힘들때 자기전에 찔끔찔끔 읽었다. 문장이 수려하고 아이디어들이 영양가가 많아서 회사 일에 쩔어 있을 때 읽으면 특히 좋았다.
책의 메인 아이디어는 “어떤 공간과 어떤 희망이 일치했을 때,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 부른다”라는 명제다. 아름다운 건축이라는 것은 우리의 숨겨진 열망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 혹은 우리가 우리 삶에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은 어떤 특질에 대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왜 자연과 전혀 멀어진 20세기 후반의 집들이 자연적인 모티브와 건축자제에 열광하고 있는가 (자연을 거기서라도 느끼기 위해서)라든가 왜 18세기 이전의 부르조아들이 장식적인 건축물을 사랑했는가 (일상생활에서도 질병과 폭력의 위협을 느꼈던 이들에게 꽃을 든 천사의 모티브는 평화와 안정의 상징) 등등을 예와 함께 서술해나간다.
읽고 있으면 저절로 아니 내 집은 그럼 나의 어떠한 특질, 어떠한 열망을 나타내고 있는가 싶어져 버리는데, 지금 살고 있는 성냥곽 같은 콘도가 아니라 제대로 원하는 대로의 집을 평생에 한 번은 짓고 싶어졌다. 그러자니 또 그럼 같은 도시에 오래 살아야 할 커밋먼트가 생기는 셈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생각을 해보니 답답하기도 하지만…
내가 짓고 싶은 집은 창이 크게 햇볕이 잘 들고 광택제를 칠하지 않은 나무바닥에 시원시원한 구조의 집이다. 볕이 잘드는 나무 바닥에 배를 깔고 책을 읽고 싶고, 책을 읽다가 싫증이 나면 양지 바른 툇마루에서 미풍을 맞아가며 낮잠을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들이 한 벽 가득 한 방 가득 있어서 책들에 둘러싸여서 휴일 오후를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넓직한 작업대 책상이 있어서 마음껏 어지르면서 공부하고 생각하고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있어서 쓱쓱쓱 스케치나 생각정리를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고정된 바닥의 개념을 벗어나 살짝 밑으로 꺼지는 거실의 꺼진 단면에 책장을 짜넣는다거나, 욕실 욕조가 바닥에서 깊이로 떨어지는 것이면 좋겠다. 난 책 읽으면서 오래 목욕하는 것도 좋으니까 욕실도 빛이 잘들고 큼직하면 좋겠다. 침실에는 창문을 열어두어도 먼지와 소음이 많이 들어오지 않으면 한다. 호텔 침대처럼 편한 침대에 깃털 베개를 두고 (웨스틴의 헤븐리 베드 원츄) 침대는 방 한가운데에 터억 놓을 테다.
생각해보니 재미있네. 나의 테마는 책읽기 좋은 곳, 쉬기 좋은 곳, 작업하기 좋은 곳 정도로 요약 되는데, 알랭 드 보통의 이론에 따르자면 그것들이 내가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나에게 부족하여 열망하는 특질이라고 하니, 난 스스로 책을 안 읽고 있고, 잘 못쉬고 있고, 집에서 작업을 잘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재밌다. 곰돌에게도 짓고 싶은 집의 이상에 대해서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