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 피부로 와닿던 기분좋은 서늘함의 정체를. 그 서늘함과 쾌적함의 바닥에는 느긋함과 여유로움도 함께 묻어있었다.
1999년 여름, 2월에 졸업하고 유학가기까지 1년 반 정도를 과외하면서 돈을 버느라 부산 집에 있었는데, 그러니까 99년 여름은 한참 과외를 열심히 하고 있을 때다. 과외의 특징상 방학이 아니고서는 저녁에야 일이 시작하니까 오전과 오후는 내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집에서 쓰시던 낡은 엘란트라를 물려받아서 여기저기 맘대로 잘 다녔다. 비오는 평일에 광복동에 영화 [도그마]를 조조로 보러 갔다가 극장에서 영화를 돌리는 최소 관객수가 2명이라는 걸 확인한 적도 있고, 내가 그 시절 이후로는 잘 느껴보지 못하는 “주부의 평화로운 오전 10시”도 집에서 누렸었다.
그 중에서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리운 것은, 성지곡 유원지 근처에 있던 커다란 부산 시립도서관의 초여름 오전. 이 시립 도서관은 교통이 영 불편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왠만하게 맘먹고 가지 않으면 잘 가지지 않는 곳인데, 대신에 그런 바람에 나름 조용하고 열람실에 질서가 있었다. 한번에 책을 3권씩 빌려 갈 수 있었고, 열람실의 커다란 나무 책상 위에서 읽는 것도 좋았다. 에어컨 따위는 없어서 큰 창을 열어놓으면 바람이 솔솔 불어오던 것과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던 냉기도 더위를 식히는 데는 좋았다. 못 읽어본 책들이 잔뜩 있어서 가기만 하면 거기서 책을 두어권 읽고 3권씩 빌려오고 하는 패턴이었는데, 의자가 딱딱해서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하면서도 도서관에 있는 것 자체가 좋았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여유있고 풍요로운 때가 따로 없을만큼 그리운 시절인데, 정작 그 당시에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남들이 다들 앞서서 나갈 때 나만 정체되어 있다는 두려움으로 마음을 많이 졸였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립기만 한데… 일본 학원 드라마 같은 데서 학교의 도서실 장면이 나오면 어김없이 그 때 그 여름의 서늘하던 도서관 생각이 난다. 영화 [러브레터]를 볼 때는 아예 도서관 장면이 피부에 닿는 서늘함으로 느껴질 정도였었지. 그 흰 페인트 벽에 냉기 올라오는 시멘트 바닥이 나에게는 “도서관”의 이미지로 굳어져서, 미국 온 이후로 만나는 오크재 서가에다가 가죽소파가 있는 도서관들은 왠지 “라이브러리”로만 등록된다.
스티브 잡스 연설에서도 나오다시피, 인생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도 어느 순간 그 점점들이 다 이어진다고 한다. 요는 지금 당장은 가시적으로 연결이 보이지 않더라도 자기가 있는 곳에서 열심히 많이 배워두어 다른 정점으로 또 옮겨갔을때 이제까지 머물렀던 정점들에서 끌어올만한 것을 얼마나 쌓아두느냐가 아닐까. 일테면 집에서 과외하면서 보냈던 아까운 시간도 하다못해 느긋함의 정서라도 경험하게 해주었다던가, 일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심어주어 지금도 나는 전업주부가 된다든가 하는 건 전혀 옵션이 아니라는 스스로를 알게 되었으니 된 것이겠지.
요새 한동안 일이 바빠서 집-회사-집-회사 하느라고 내가 향해가고 있는 큰 물길을 보는 눈이 흐려져 있었다. 2/4분기도 다 끝나가는데, 도로 면벽하고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어 볼 때가 되긴 되었다마는, 안주하지 않는 것 만큼 또 중요한 것이 지금 있는 자리에서 습득할 수 있는 걸 꼼꼼히 챙기는 것이라는 것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