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shed by Hisun on 30 Apr 2009
오늘의 일라이 통신
어제는 일찍 (오후 3시반?) 퇴근한 라이언이 집에 가서 일라이를 꺼내와서 3-4시간 등산을 갔다가 야근하던 나를 회사에서 픽업해서 집에 왔다. 등산의 여파로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져 있던 개가 새벽에 제 혼자 일어나서 (보통 우리 침실 바닥에 담요깔고 잔다) 거실에서 부시럭거리길래 일어났더니 뭔가 절박한 눈빛으로 문앞까지 왔다갔다하면서 낑낑 거리는 거였다. 화장실 가고 싶은가? 하고선 나는 주섬주섬 옷을 주워입고 새벽 3시에 개 똥을 뉘러 데리고 나갔다. –_-;;;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상당한 양의 설사끼 있는 응아를 퍼질러주신 일라이… 개가 쓰는 응아용 봉지도 대단한 비지니스인 게 하루에 적어도 두번씩 응아 하시고 매일매일 해주시는데다가 다시 쓸 수도 없고… 개줄에 60개들이 용기를 딱 묶어 나가서 돌돌 풀면 쓰기 좋은 형태로 디자인 된 개 응아 픽업 비닐봉지 너무 유용하시며 길가다 보면 다른 개 주인들도 다 이거 쓰고 있다.
나름 매너있는 개라서 응아는 사람들한테 잘 안보이는 구석탱이나 풀숲 등에 들어가서 보시는 일라이님 덕에 나는 흰새벽에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는 풀숲 더미에서 개똥줍느라고 고생고생… 이놈이 와중에 나랑 나갈 떄 집중적으로 응아하고 곰돌과 나갈때는 쉬만 하는 거 같다. 나름 위생관념 있으신 개라 응아하고 나서는 풀숲에서 막 브레이크댄스를 추면서 자기 털에 안묻었는지 철저히 확인도 하신다.
집에 오면 보통 네 발바닥과 X랑 X랑 (자체 검열) 현관에서 다 닦고 집으로 들여보낸다. 개줄은 현관앞에 걸어두고. 보통 새벽에 화장실 갔다와서는 도로 가서 자는데, 이놈 급한 거 해결해 준 것이 고마웠던지 괜히 막 와서 친한척 하고 앵긴다. 본래는 맨날 데리고 나가서 놀아주는 라이언만 지 아부지고, 맨날 야단치고 이빨 닦아주려고 틈틈히 노리는 나는 못된 계모로 생각하는 넘인데, 오늘 아침에는 막 와서 친한척…
등산 갔던 산에서 뭘 잘못먹었는지 어땠는지, 아침에 집 카페트에다가 꿀럭꿀럭 토하기도 하고 (라이언을 깨워서 치웠다), 라이언이 운동 데리러 나갔을 때도 설사를 여러번 했다고 해서, 오늘 아침에는 초긴장이다. 오전에 미팅 없는 내가 집에서 한 오전 10시쯤까지 데리고 있고, 라이언이 점심 때쯤 미팅 끝나면 바로 집에 와서 일하기로 했다. 개는 지금 책상 밑에서 죽은척 하는 중. 그래도 뱃속 안좋아도 밖에 데리고 나갈때까지 참아주니 다행한 일이지.
아까는 또 끙끙대길래 괜히 쫄아서 밖에 데리고 나갔다가 나간 김에 브로드웨이까지 가서 Vivace에서 라떼를 한잔 샀는데, 요새 집에서만 엉터리 라떼를 만들어 먹다가 좋아하는 비바체의 부드럽고 고소한 커피를 한모금 마시자 “으어어—” (노인네가 온천 들어갈때 내는 소리를 상상하시라)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왔다. 배탈난 일라이지만, 개줄을 한손에 잡고 다른 손으로는 커피컵을 쥐고 기절하게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이른 아침 길을 걸으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는 기분이 한 0.5초가량 들었다. 세수도 하지 않고 부스스한 머리에 후드티의 후드를 푹 눌러쓰고 츄리닝 입고 개 똥 뉘러 걷고 있는 주제에 그렇게 행복한 기분이 들다니 내가 생각해도 웃겼다.
일라이는 그동안 보니까 여느 개들이 좋아하는 공잡기나 프리스비 찾아오기에는 전혀 관심없고, 헤엄치기는 고사하고 물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하며, 대신 달리기를 무척 신나하고 다람쥐를 발견하면 완전 잡고 싶어서 미친다. 공원에 다람쥐 사냥을 데리고 갈때 다람쥐가 약을 올리면서 나무위로 쪼로로 기어 올라가 버리고 나면 앞발 하나를 척 들어올리고 귀를 쫑긋 세우고서 언제까지고 pointing (pointer라서) 하고 있다. 전에는 웬 애기 다람쥐 하나를 거의 잡을 뻔 했는데 거의 다 잡아놓고 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 지가 깜짝 놀래서 놔줬다고 ㅋㅋㅋ. 이놈 완전 약았는데, 한편으로는 아직 한살밖에 안된 어린이라서, 겁도 많고 눈치도 많이 보고 고집도 세고 그렇다. 분리불안 증세가 좀 있어서, 우리가 데리고 나갔다가 가게 앞에 묶어놓고 가게 안에서 일을 보고 나오면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우리를 보자마자 완전 서럽게 서럽게 엉엉 울고, 울다가 못해 제 풀에 화가 나서 “어쩌면 나한테 이렇게 할 수가 있어?”라는 투로 왈왈 짖고 난리난리 난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그동안 착한 개 일라이다.

